葛庵先生文集
de Hyŏn-il Yi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시문집이다. 본관은 재령이고 자는 익승翼昇이며 참봉 시명時明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과 1648년 2차례나 초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복시를 단념했다. 학행으로 영릉참봉ㆍ사직서참봉ㆍ공조좌랑 등을 제수했으나 나가지 않았고, 1689년(숙종 15) 사업司業에 임명된 후 예조참판ㆍ좨주ㆍ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ㆍ이조참판ㆍ대사헌ㆍ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1694년 갑술환국 때 조사기趙嗣基를 신구하다가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된 후 종성ㆍ광양ㆍ안동 등으로 이배되기도 했다.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원집은 권1 시 184편, 권2 소疏 9편, 권3 소疏 16편, 권4 소疏 11편, 권5 소疏 7편ㆍ차箚 4편ㆍ헌의獻議 4편, 권6 경연강의, 권7 경연강의, 권8 서書 23편, 권9 서書 34편, 권10 서書 22편, 권11 서書 12편, 권12 서書 6편, 권13 서書 13편, 권14 서書 32편, 권15 서書 11편, 권16 서書 25편, 권17 서書 47편, 권18 잡저 6편[栗谷李氏論四端七情書辨ㆍ讀金天休論李大柔理氣性情圖說辨ㆍ權學士士範疑義ㆍ諭館學諸生文ㆍ記朴將軍遺事ㆍ記昏朝癸丑錄], 권19 잡저 1편[愁州管窺錄], 권20 서序 9편ㆍ기記 5편, 권21 발跋 15편ㆍ축문 20편, 권22 제문 21편ㆍ잠箴 2편ㆍ명銘 1편ㆍ찬贊 1편, 권23 비碑 6편ㆍ묘표 3편, 권24 묘갈 15편, 권25 묘갈명 17편, 권26 행장 4편, 권27 행장 5편, 권28 행장 6편, 권29 시장諡狀 4편 등이 실려 있고, 속집은 권1 시 24편ㆍ서書 48편, 권2 서書 63편, 권3 서書 19편ㆍ잡저 1편[書贈黃秀才四勿箴]ㆍ기記 1편ㆍ상량문 1편ㆍ축문 2편ㆍ제문 7편ㆍ신도비명 1편ㆍ묘갈명 5편, 권4 부록[祭文ㆍ挽章] 등이 실려 있다.별집에는 권1 사辭 1편ㆍ시 53편, 권2 소疏 55편, 권3 서書 28편 ㆍ증언贈言 1편ㆍ잡저 2편[政說ㆍ月行分度推算法]ㆍ서序 6편ㆍ발跋 13편ㆍ상량문 2편, 권4 제문 3편ㆍ묘표 9편ㆍ묘갈명 6편, 권5 묘갈명 8편ㆍ묘지명 2편ㆍ행장 5편, 권6 행장 7편ㆍ시장諡狀 1편 등이 실려 있고, 부록에는 권1 연보年譜, 권2 행장, 권3 묘지명, 권4 가전家傳, 권5 제문 등이 실려 있으며, 별책으로 『성유록聖諭錄』이 있다. 초교初校는 아들 재栽, 재교는 김태중金台重ㆍ권두인權斗寅, 대교對校는 권두경權斗經ㆍ이완李琓ㆍ이광정李光庭 등이 했다. 그러나 갑술옥사 이후 저자가 죄적罪籍에 올라 있어 간행되지 못하였고, 1811년(순조 11) 별집을 추가하여 간행했으나 관금官禁 당했으며, 저자가 신원되는 과정에서 1909년(융희 3) 중간되었다. 『성유록』에는 1760년(영조 36) 이재李栽의 발문이 있다.
Ediciones (1)
- 葛庵先生文集 (1909)
[s.n.] · kor